[신조어 추적기 시리즈 ②] 지난 글에서 다룬 ‘글레이즈’는 발화점과 의미가 모두 명확한 사례였다. 이번에 다룰 ‘6-7(식스세븐)’은 정반대다. 기원이 된 노래와 시점은 이례적으로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정작 이 표현이 무슨 뜻인지는 끝까지 아무도 확정하지 못했다. 이 모호함 자체가 어떻게 전 세계적인 확산으로 이어졌는지를 추적한다.
1. 출처: 한 곡의 후렴구에서 시작됐다
‘6-7’은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 래퍼 스크릴라(Skrilla)의 드릴 랩 곡에서 비롯됐다. 이 곡은 2024년 12월 비공식적으로 먼저 퍼졌고, 2025년 2월 정식 발매됐다. 곡 후반부, 비트가 떨어지는 지점에 “6-7″이라는 숫자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곡의 맥락만 보면 이 숫자는 가볍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일부 언어학자와 음악 평론가들은 이 표현이 스크릴라의 고향인 필라델피아 또는 시카고의 특정 지역(67번가)을 가리킨다고 분석했고, 아프리카계 미국인 영어 연구자 테일러 존스는 경찰이 사망 사건을 알릴 때 쓰는 무선 코드와 연관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다만 정작 스크릴라 본인은 여러 인터뷰에서 “이 표현에 실제 의미를 부여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혔다.
2. 확산: 의도치 않은 우연한 결합
곡 자체의 의미와 별개로, 이 표현이 인터넷 밈으로 폭발한 계기는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나왔다. 2024년 12월, 한 틱톡 사용자가 프로농구 선수 라멜로 볼의 경기 영상에 해설을 입힌 편집물을 올렸다. 해설자는 “이 선수는 키가 6피트 1~2인치인 것처럼 움직이는데, 실제로는 6피트 7인치다”라고 말했고, 정확히 그 순간 노래의 비트가 떨어지며 “6-7” 가사가 흘러나오도록 편집됐다.
선수의 신장(6피트 7인치)과 노래 가사의 숫자가 우연히 맞아떨어지는 이 편집 포인트가 알고리즘을 타고 빠르게 확산됐다. 이후 오버타임 엘리트 소속 농구 선수의 반복적인 사용, 한 소년이 농구 경기장에서 흥분한 손짓과 함께 이 표현을 외치는 영상(“67 키드”)까지 더해지며 표현은 원곡의 맥락에서 완전히 분리됐다.
3. “비어 있음”이 확산의 동력이 됐다
여기서 핵심적인 분석 지점이 나온다. 위키백과는 이 표현을 가리켜 “고정된 의미가 없다(no fixed meaning)”고 명시하고 있고, 한 심리학 매체의 분석도 이 표현이 SNS를 타고 퍼지는 과정에서 원래 의미를 잃고 무의미한 표현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스포츠 매체 블리처 리포트는 이를 문예 이론에서 쓰이는 ‘부유하는 기표(floating signifier)’ 개념으로 설명한다 — 특정한 하나의 의미에 고정되지 않고, 사용하는 사람마다 다른 의미를 채워 넣을 수 있는 기호라는 뜻이다.
이건 지난 시리즈에서 다룬 “감도안옴” 표현과 유사한 메커니즘이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간 경우다. “감도안옴”은 적어도 일관된 정서(과한 노력에 대한 감탄)를 담고 있었다. 반면 ‘6-7’은 숫자 두 개가 어디에나 끼워 맞춰질 수 있다는 점, 즉 의미의 텅 빈 그릇이라는 점 자체가 확산의 동력이 됐다.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이 전혀 필요 없고, 누구나 자기 맥락에 맞게 가져다 쓸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진입장벽을 없앴다.
4. 학술적으로 낯설지 않은 현상
이런 ‘의미 없는 유행어’는 사실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위키백과의 ‘6-7′ 항목은 이 표현을 20세기 초 미국에서 유행했던 의미 불명의 속어 “23 skidoo”, 더글러스 애덤스의 소설에서 비롯된 임의의 숫자 ’42’, 그리고 유튜브 애니메이션에서 파생된 무의미 추임새 ‘스키비디(Skibidi)’와 같은 계보로 분류한다. 의미가 비어 있는 표현이 오히려 폭넓게 전유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사례들은 공통된 패턴을 보인다.
‘6-7’의 경우 그 확산 범위가 유독 넓었다. 2025년 한 해 동안 미국 의회의사당 행진, 교황의 손짓 화답, 대형 패스트푸드 체인의 프로모션, 인기 비디오 게임들의 이모트 추가, 심지어 성인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의 에피소드 소재로까지 등장했다. 한 음악 평론 매체는 이런 확산 속에서, 정작 원곡을 만든 아티스트의 음악적 의도는 거의 주목받지 못한 채 그가 일차원적인 마스코트로 소비되고 있다는 비판적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5. 한국에서의 수용
한국에서도 이 표현은 영어 발음 그대로(“식스세븐” 또는 “67”)로 수입되어, 주로 10대·20대 사이에서 인터넷 밈으로 소비되고 있다. 지난 글에서 다룬 ‘글레이즈’와 마찬가지로 번역되지 않고 원어 그대로 들어온 사례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글레이즈는 특정 산업(AI) 종사자·관심층 사이에서 의미를 정확히 공유하며 쓰이는 반면, ‘6-7’은 애초에 의미가 없는 표현이기 때문에 정확한 번역이나 의미 이해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 숫자라는 형식 자체가 언어 장벽을 거의 완전히 우회하는 셈이다.
다음 편에서는 신조어가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의 정체성과 결합하면서, 같은 표현을 두고도 “이건 우리 말이다”라는 식의 소속감과 배타성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사례를 다룬다.
참고 자료: 영어판·한국어판 위키백과 ‘6-7’ 문서, Psychology Today(2025년 9월 15일), Bleacher Report(2025년 9월 9일), WHYY(2025년 11월 17일), Distractify(2025년 2월 7일) 등 종합. 원곡 가사 중 폭력·총기 관련 표현이 포함된 부분은 직접 인용하지 않고 보도 내용을 바탕으로 요약했다. 저작권이 있는 음원 가사 전문은 본문에 포함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