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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어 소멸의 법칙

신조어 10개 중 7개는 사라진다: 소멸의 법칙

[신조어 추적기 시리즈 ④] 지금까지 이 시리즈에서는 살아남아 자리 잡은 표현들 — 글레이즈, 6-7, 원영적 사고 — 을 다뤘다. 이번 글에서는 관점을 뒤집어, “왜 대부분의 신조어는 살아남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을 다룬다. 한 신조어가 태어나 정착하기까지의 과정보다, 통계적으로는 사라지는 경우가 훨씬 더 흔하기 때문이다.

1. 정량화된 소멸률: 국립국어원 조사

국립국어원이 2005~2006년 사용됐던 신조어 938개를 추적 조사한 결과는 이 시리즈가 다룰 가장 구체적인 수치를 제공한다. 10년 뒤인 2015년 시점까지, 매체에서 연평균 1회 이상(즉 10년간 총 20회 이상) 사용된 단어는 938개 중 250개, 비율로는 26.6%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신조어 10개 중 약 7개는 10년 안에 사실상 소멸한다는 뜻이다.

이 수치는 이 시리즈에서 다룬 사례들을 다른 각도로 보게 한다. ‘글레이즈’나 ‘원영적 사고’처럼 명확한 발화점을 갖고 빠르게 정착한 사례는, 통계적으로 보면 오히려 예외에 가까운 ‘생존자’다. 같은 시기에 비슷한 방식으로 등장했지만 기록조차 거의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무수한 표현들이 존재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합리적이다.

2. 신조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전 국립국어원장이자 한글학회장을 지낸 권재일 서울대 언어학과 명예교수는 신조어 현상 자체가 특정 세대만의 일이 아니라고 짚는다. 서울 국립한글박물관에 전시된 1920년대 사전에는 ‘모뽀(모던 보이)’, ‘모껄(모던 걸)’ 같은 단어가 등재돼 있다. 1922년 출간된 한국 최초의 신조어 사전 ‘현대신어석의’에는 오늘날 표준어로 굳어진 ‘샐러리맨’, ‘핸드백’, ‘다혈질’, ‘감상’ 같은 단어들이 당시에는 신조어로 분류돼 있었다. ‘빽'(1950년대), ‘전업주부'(1960년대), ‘신세대'(1990년대) 역시 등장 당시에는 모두 신조어였다.

이는 신조어의 생성과 소멸이 특정 시대의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언어가 작동하는 구조 자체에 내재된 항상적인 현상임을 보여준다.

3. 매체 환경이 신조어의 형태를 결정한다

흥미로운 점은 신조어가 만들어지는 방식이 당대의 통신 기술과 긴밀하게 연동된다는 것이다. ‘2424(이사이사)’, ‘8282(빨리빨리)’ 같은 숫자 조합형 신조어는 1990년대 삐삐(무선호출기)의 등장과 함께 나타났다. 자판 입력으로 텍스트를 주고받는 PC통신이 보급되면서는 ‘ㄳ(감사)’, ‘ㅋㅋ(큭큭)’ 같은 초성·자음 활용형이 늘었다. 2000년대 온라인 게임·커뮤니티 환경에서는 ‘득템’, ‘만렙’ 같은 게임 용어가 일상어로 번졌고, ‘고나리'(관리의 오타), ‘뭥미'(뭐임의 오타)처럼 오타에서 출발한 표현, ‘댕댕이'(멍멍이), ‘커엽다'(귀엽다)처럼 한글 자형의 시각적 유사성을 이용한 이른바 ‘야민정음’ 표현도 등장했다.

이 시리즈에서 다룬 사례들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글레이즈’는 X(트위터)라는 텍스트 기반 플랫폼에서, ‘6-7’과 ‘원영적 사고’는 영상 편집과 알고리즘 추천이 핵심인 틱톡·릴스 환경에서 태어났다. 매체가 바뀔 때마다 신조어가 만들어지는 형식 자체가 함께 바뀌어 왔다는 점에서, 신조어의 형태는 그 시대 미디어 환경의 거울이라고 볼 수 있다.

4. 무엇이 신조어를 ‘생존’시키는가

그렇다면 살아남는 26.6%와 소멸하는 73.4%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권재일 교수는 의사소통 도구로서 성공한 신조어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특정 집단에만 갇혀있지 않을 것, 일반인에게 널리 쓰일 것, 그리고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것. 핵심은 폐쇄성을 벗어나는지 여부다.

이 기준을 이 시리즈의 사례에 적용해보면 시사점이 있다. ‘원영적 사고’는 특정 팬덤에서 출발했지만, 한 달 만에 기업 브랜딩과 방송 콘텐츠로 빠르게 옮겨가며 원래 소재(아이돌)와 무관한 사람들에게까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다. ‘6-7’은 애초에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될 수 없는 구조였다 — 의미가 비어 있었기 때문에 진입장벽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 통계적으로 다수를 차지하는 소멸 사례들은, 발화 당시의 특정 맥락(특정 커뮤니티, 특정 사건)에 너무 강하게 묶여 있어 그 맥락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끝내 의미가 전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5. ‘사전 등재’라는 좁은 문

소멸률이 높은 만큼, 신조어가 정식 국어사전에 등재되기까지는 더 먼 길을 거쳐야 한다. ‘가성비’, ‘식감’처럼 오늘날 일상에서 매우 흔하게 쓰이는 단어조차, 등장한 지 10년이 채 안 됐다는 이유로 아직 정식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경우가 있다. 다만 과거 종이 사전 체제에서는 개정 자체가 큰 작업이었던 것과 달리, 국립국어원이 2016년 출범시킨 웹 기반 개방형 사전 ‘우리말샘’은 일반인이 직접 뜻풀이와 용례를 등록·수정할 수 있는 구조로, 정식 등재보다는 아카이빙(기록·보존) 기능에 무게를 두고 있다. 국립국어원 관계자에 따르면 특정 집단이나 성별을 비하하는 표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단어가 등재 가능하며, 출범 이후 약 2만 건의 단어 정보가 등록·수정됐다고 한다.

6. 신조어 추적기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지금까지 네 편에 걸쳐 신조어가 생성되고, 의미를 획득하거나 잃고, 정착하는 과정을 추적했다. 이번 글의 통계가 보여주는 건, 이 시리즈에서 다룬 생존 사례들이 오히려 통계적으로는 소수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신조어 분석에서 중요한 건 “이 표현이 왜 떴는가”만큼이나 “왜 대부분은 뜨지 못하고 사라지는가”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다음에 새로운 신조어를 접하게 된다면, 그것이 1년 후, 5년 후에도 살아남을 26.6%에 속할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잊힐 73.4%에 속할지를 가늠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찰이 될 것이다.


참고 자료: 한국일보 [겨를] ‘모뽀’ ‘모껄’ 100년 전에도 신조어… 10개 중 7개는 소멸한다(2019년 9월 18일, 한소범 기자), 국립국어원 신조어 사용 추적 조사(2005~2006년 신조어 938개 대상, 2015년 기준),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운영 현황 등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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