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에서 지금까지 다룬 “거제 야호”, “모르겠고 파라파라”, “낳음”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세 표현 모두 사전적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거나, 원래 뜻과 무관하게 쓰인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한국 인터넷 문화만의 특징은 아니다. 같은 시기 영어권에서도 정확히 같은 패턴이 관찰된다. 이번 편에서는 국경을 넘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 ‘무의미한 추임새’ 유행 현상을 짚어본다.
스키비디: 사전에 오른 ‘의미 없음’
올해 케임브리지 사전에 새로 등재된 단어 중 ‘스키비디(Skibidi)’가 있다. 사전적 정의 자체가 특이한데, 정확한 뜻을 가진 단어가 아니라 그냥 감탄이나 강조를 표현할 때 쓰는 말로 등재됐다. 어원은 유튜브 애니메이션 ‘Skibidi Toilet’에 등장하는 변기 캐릭터들이 부르는 노래의 후렴구다. 이 후렴구 자체는 별다른 뜻이 없는데, 이 애니메이션이 알고리즘을 타고 확산되면서 ‘스키비디’라는 음절 자체가 Z세대 사이에서 거의 모든 감정을 대신 표현하는 만능 감탄사로 굳어졌다.
이 지점에서 “거제 야호”와의 접점이 보인다. “거제 야호” 역시 지명과 일본어 감탄사를 아무 논리 없이 붙인 조합인데, 정확한 의미 전달이 아니라 톤과 텐션만으로 소비된다는 점에서 스키비디와 작동 방식이 거의 같다.
왜 ‘의미’보다 ‘톤’이 먼저 소비되는가
두 사례를 나란히 놓고 보면,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패턴이 있다.
- 의미보다 감정적 공감이 먼저 온다: 정확한 뜻을 몰라도 톤과 텐션만으로 상황에 갖다 붙일 수 있다. 시리즈 앞선 편에서 다룬 “낳음” 역시 원래 뜻(입덕)과 완전히 분리된 채 감탄사로만 기능한다는 점에서 같은 패턴이다.
- 짧은 영상 포맷이 의미를 압축시킨다: 숏폼 콘텐츠는 맥락을 설명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한 음절, 한 문구가 감정 전체를 대신 표현하는 방향으로 언어가 압축된다.
- 집단 정체성의 표지가 된다: 이 표현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나뉘면서, 표현을 사용하는 행위 자체가 ‘이 문화 안에 있다’는 신호로 작동한다. 앞서 “모르겠고 파라파라” 편에서 다룬 댓글 커스터마이징 놀이도 같은 맥락이다.
하나 다른 지점: 원본과의 거리
다만 두 사례가 완전히 같지는 않다. 스키비디는 원본 콘텐츠(애니메이션)와 점점 멀어지며 독립된 감탄사로 굳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반면, “거제 야호”는 리센느라는 실존 아티스트와 끝까지 함께 붙어 다니며 음원 역주행, 실제 지자체 홍보대사 위촉까지 이어졌다. 즉 스키비디가 ‘탈맥락화’로 가는 밈이라면, 거제 야호는 밈이 커질수록 오히려 원본이 함께 부상하는 ‘맥락 강화형’ 밈에 가깝다.
이 밈들이 보여주는 것
언어는 늘 그 시대의 소통 방식보다 한발 앞서 움직인다. 정확한 뜻을 전달하기보다 감정과 텐션을 먼저 전달해야 하는 지금의 콘텐츠 환경에서는, 국가와 언어를 가리지 않고 비슷한 형태의 ‘무의미한 만능 감탄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리즈에서 다룬 “감도 안옴”, “거제 야호”, “파라파라”, “낳음”은 모두 이 큰 흐름 안에 있는 각기 다른 표본들이다.
이 글은 ‘바이럴 딕셔너리’ 연재의 다섯 번째 편입니다.